지난 29일 저녁 서울환경연합 회화나무홀(종로구)에서는 ‘도시나무보호법 제정을 위한 입법연구 착수 워크숍’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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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환경연합 조해민 활동가가 시티트리클럽 활동을 소개하며 도시나무보호법 제정 논의가 시작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이번 워크숍은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태현 교수(지구법학회 회장)가 연구책임을 맡아 진행하는 도시나무보호법 입법연구의 출발점으로 마련됐다. 행사장에는 법률가와 환경단체 활동가, 도시숲 전문가, 시민 참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석해 도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제도 방향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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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도시나무보호법 입법연구를 맡은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생태법학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다. 특히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를 비롯해 자연물의 법적 지위와 권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인간 중심의 법체계를 넘어 자연과 생태계의 이익을 법적으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연구해 온 박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도 도시 나무를 단순한 관리 대상이 아닌 생태적 이익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새로운 법적 접근을 제안하고 있다. |
참석자들은 현재 도시 나무가 법적으로 ‘생명체’가 아닌 ‘시설물’ 또는 ‘재산’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가로수는 도로시설물, 보호수는 별도 보호체계, 도시숲은 공원녹지 체계로 관리되면서 보호 체계가 분절돼 있고, 그 결과 수많은 나무가 법과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훼손된 뒤에야 알게 되는 시민들”
워크숍에서는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사후 대응 중심의 행정이 꼽혔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나무가 이미 벌목되거나 심각하게 훼손된 이후에야 상황을 알게 된다. 관련 자료나 대안 검토 과정 역시 뒤늦게 공개되면서 보존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발제자들은 최근 논란이 된 여러 사례를 통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 인근에서는 수령 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제초제 주입 의혹으로 훼손되면서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주민들이 이상 징후를 발견했지만 사유지, 보호수 지정 이전 단계라는 이유로 신속한 행정 개입이 어려웠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마포대로 삼개로에서는 가로수 벌목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 공개와 시민 의견 수렴 절차가 부족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시민들은 이미 벌목이 진행된 이후에야 상황을 파악했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통로가 사실상 없었다.
은평구 응암로에서는 가로수에 구멍을 뚫고 독성 물질을 주입해 고사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특정 영업장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나무를 죽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참석자들은 이들 사건이 서로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나무가 훼손된 뒤에야 시민들이 상황을 알게 되는 구조’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시민이 나무의 대변인이 되는 시대
이번 입법연구의 핵심 제안 가운데 하나는 ‘시민 나무가디언십(Citizen Tree Guardianship)’ 제도다.
이는 시민을 단순한 민원인이 아니라 특정 나무의 보호자·관찰자·기록자로 인정하는 제도다. 시민 가디언은 나무의 위치와 수종,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벌목이나 강전정, 뿌리 훼손 등의 위험을 발견하면 신고할 수 있다. 또한 보호 가치가 있는 나무를 추천하거나 관련 행정 정보에 접근하고 의견을 제출할 권리를 갖게 된다.
다만 나무의 소유권이나 점유권을 갖는 것은 아니며, 임의로 가지치기나 방제 작업을 하거나 사유지에 무단 출입할 권한은 부여되지 않는다. 나무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행정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무의 생태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시티트리클럽, 입법의 토대를 만들다
이번 논의의 또 다른 축으로는 시민 참여 플랫폼인 ‘시티트리클럽(City Tree Club)’이 주목받고 있다.
시티트리클럽은 시민들이 생활권 주변의 가로수와 도시 나무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는 활동이다. 참여자는 자신이 관심 있는 나무를 지정해 수종과 생육 상태를 살피고, 계절 변화와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한다.
입법 연구진은 이러한 시민 참여 활동이 향후 시민 나무가디언십 제도의 실질적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단순한 환경 캠페인을 넘어 시민이 도시 나무의 상태를 관찰하고 위험 요소를 감시하는 공공 데이터 생산자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포대로 가로수 문제를 계기로 시작된 시티트리클럽 활동은 도시 나무를 둘러싼 갈등을 단순한 찬반 논쟁이 아닌 시민 참여와 정보 공개, 그리고 생태 민주주의의 문제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심스러우면 나무의 이익으로”
워크숍에서는 도시나무보호법의 핵심 원칙으로 ‘인 두비오 프로 아르보레(In dubio pro arbore)’가 제시됐다.
라틴어로 ‘의심스러운 경우 나무의 이익으로’라는 뜻이다.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하거나 훼손이 비가역적일 가능성이 있는 경우, 우선적으로 보전 결정을 내리고 독립적인 조사와 시민 의견 수렴이 끝날 때까지 작업을 유보하자는 사전예방 원칙이다.
발제자들은 “한 번 베어진 나무는 되돌릴 수 없고 수십 년 동안 형성된 생태적 기능도 함께 사라진다”며 “개발 필요성만큼 보전 필요성 역시 동등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례에서 시작해 법률로
참석자들은 국가 차원의 도시나무보호법 제정이 필요하지만 정치적·제도적 문턱이 높은 만큼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한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조례를 통해 시민 참여, 정보 공개, 사전 통지, 의견 제출 등의 절차를 먼저 제도화하고, 실제 운영 사례를 축적해 향후 국가법 제정의 근거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조례안은 총칙, 주체, 대상, 활동, 절차, 거버넌스 등 6개 영역 15개 조항 체계로 구성되며 시민 추천 보호나무 제도, 긴급보호조치, 시민·전문가 협력체계 구축 등이 주요 내용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번 워크숍은 도시 나무를 단순한 녹지 시설이나 경관 요소가 아니라 공동체의 자연자산이자 생명체로 바라보는 새로운 법적 관점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참석자들은 지역 조례 제정과 시민 참여 플랫폼 운영을 통해 도시나무보호법 제정의 실질적인 토대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