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화려한 건물 사이 골목 한켠에 철조보호망에 둘러싸인 소녀를 보았다. 여전히 소녀의 발바닥은 땅에 닿지 않는다. 옆에는 시민활동가 한 분만이 소녀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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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보호망에 갖혀있는 소녀상 |
1992년 시작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극우 성향 단체의 반복적인 방해로 인해 시위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하며 실질적인 보호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수요시위의 시작: 1992년 1월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방한에 맞춰 처음으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개최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주축이 된 이 시위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 진상 규명, 역사 교육, 추모사업 등을 촉구하며 매주 수요일 열렸다.
정의기억연대(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여성·인권단체가 주최했고,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발언자로 나서며 세계 최장기 연속 시위라는 기록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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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은 소녀상 농성 3439일차였다 |
시위의 성장과 국제적 연대
1990~2000년대를 거치며 수요시위는 국내외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를 얻어 유엔·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인권운동으로 성장했다. 일본, 독일, 미국, 필리핀 등에서도 수요시위가 개최되며 전시 성폭력 문제의 보편적 해결을 요구하는 상징적 시위로 자리잡았다.
2011년에는 1000회를 맞아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고, 이후 전 세계 각지로 확산되며 기억과 추모의 상징물이 되었다.
방해 시위 등장: 2021년 이후
하지만 2021년부터 극우 성향 단체들이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맞불 집회를 정례화하면서 갈등이 격화됐다.
반대 측은 장소 선점, 스피커 소음, 혐오 발언, 조롱성 피켓 등을 동원해 사실상 시위를 마비시키는 행위를 이어왔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모욕하는 발언들이 이어져 시민사회와 국제 인권단체의 우려를 낳았다.
인권위 권고: “집회의 자유 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긴급구제 조치를 시작으로, 2024년 5월에도 다시 경찰에 실효적인 시위 보호 조치를 권고했다.
인권위는 “반대 집회는 집회의 자유가 아닌 방해 목적의 허위 신고와 혐오 표현이며, 경찰이 이를 방치함으로써 수요시위의 역사성과 존엄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위의 의미, 오늘을 묻다
수요시위는 단지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외침을 넘어, 한국 사회의 여성 인권·전쟁 범죄 기억·정의 실현을 위한 상징적 투쟁이기도 하다.
1992년부터 이어진 외침은 점차 할머니들의 증언에서 시민들의 기억 운동으로 변화했고, 오늘날 그 정신은 평화·기억·정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공공의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