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기다렸다는 듯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 얘기가 흘러나왔다. 정치권 안팎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선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최근 보수 진영에선 낯선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검토’ 논란을 둘러싼 비판이 진보 진영을 넘어 보수 내부에서 더 날카롭게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수의 대표 주자들이 입을 열었다.
조갑제. 정규재. 한국 보수의 지난 20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거의 동시에 윤석열을 향해 등을 돌렸다.
조갑제는 “김문수 선출은 최악의 선택”이라며, “국민의힘은 결국 다시 윤석열에게로 돌아갔다”고 개탄했다. 정규재는 계엄 검토를 “시장 자유와 정면 충돌하는 발상”이라며 비판했다.
두 인물의 이력과 철학은 분명 다르다.
조갑제는 반공과 안보를 신념처럼 지켜온 이념 보수의 상징이고, 정규재는 자유시장과 작은 정부를 신봉해온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그러나 이들이 공통적으로 중시해온 두 가치 ‘체제’와 ‘자유’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윤석열의 계엄 구상은 그 뿌리를 흔들었다.
계엄령은 민주주의의 최후 수단이다.
그것이 권력 연장을 위한 도구로 등장하는 순간, 보수가 지켜온 ‘질서’는 오히려 해체되고 만다.
군을 정권의 방패막이로 동원하는 순간, 자유는 사라지고 체제는 퇴행한다.
조갑제와 정규재가 등을 돌린 건 그래서다.
정권이 아닌 ‘보수’에 충실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국민의힘은 그 판단마저도 배신으로 몰아간다.
이견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원로의 비판은 ‘진영 파괴’로 낙인찍힌다.
광장은 뜨겁지만, 이성은 설 자리를 잃었다.
지금 국민의 힘은 여전히 보수를 대변하고 있는가?
보수 논객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이재명 지지층을 오히려 결집시킬 것”이라 전망했다.
이는 단순한 판결 분석이 아니다. 윤석열의 정치가 가져온 ‘역풍’의 결과를 지적한 것이다.
공세의 칼끝이 무뎌진 쪽은, 오히려 윤석열 쪽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보수가 무너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더 이상 보수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체제와 자유, 책임과 균형—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말과 행동 속에선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민주당의 몇몇 정책들이 과거 보수정당이 수호하던 질서와 안정에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누가 진짜 보수인가—이 질문이 다시 공론장에 올라온다.
다가올 대선은 결국 윤석열의 대리인과 이재명 후보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보수의 주체와 정의를 새롭게 쓰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그 끝엔 지금의 보수 정당이 아닌, 과거의 보수 가치가 새롭게 재정의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마주한 것은, 윤석열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반(反)보수의 시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