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안제시] ‘현수막 공화국’의 그림자…갈등 부추기고 환경 망가뜨리는 선거 홍보
    • 22일 간의 대통령 선거의 선거 운동 기간이 끝났다. 정당별로 법으로 허용된 현수막 외에 지지자들의 현수막까지 전국을 뒤덮었다. 도심 전신주마다 내걸린 수만 장의 후보 얼굴들, 색색의 구호가 눈을 덮고, 거리 곳곳은 벽보와 플래카드로 장식된다. 표를 위한 과잉 경쟁은 이제 시각적 과부하를 넘어, 세금 낭비와 환경 오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복합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

      ■ ‘유권자 알 권리’라는 명분…이젠 지속 가능한가?

      선거 현수막과 벽보는 오랜 시간 유권자와 후보자를 연결하는 주요 창구였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와 SNS의 보편화 속에서 아날로그식 홍보는 점점 시대착오적인 유물로 전락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만 벽보·현수막을 훼손한 선거사범이 1900명을 넘어섰고, 시민들은 “거리의 현수막이 선거 혐오만 부추긴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한편, 이들 홍보물 제작과 설치에 투입된 예산은 매 대선마다 수십억 원대. 
      선관위는 정확한 지출 규모조차 “파악이 어렵다”고 답한다. 그러나 단순 추산만으로도 현수막 5만 개 이상, 벽보 100만 부 이상, 국민의 세금은 눈먼 돈처럼 쓰이고 있다.

      ■ 환경 비용은 누구의 책임인가

      더 큰 문제는 이 홍보물들이 사실상 대부분 폐기물로 직행한다는 점이다. 주성분이 플라스틱 합성수지인 현수막은 재활용률이 30% 미만에 그치고, 다이옥신 발생 등의 우려로 소각 처리 시 환경부담이 크다. 코팅된 벽보 역시 재활용이 어려워, 대부분 창고에 쌓이거나 매립된다.

      결국 “단 몇 주 쓰고 버려지는 선거 홍보물이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방식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는 단순한 예산 문제를 넘어 환경정책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편에선 탄소중립을 외치면서, 다른 한편에선 환경을 파괴하는 정치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고수하는 것이다.

      ■ 정치가 환경을 버릴 때…갈등은 더 커진다

      환경문제는 늘 ‘경제’와 ‘편의’에 밀려 후순위로 취급돼 왔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문화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거스르는 구조가 되었다. 진영 대결식 현수막 문구는 유권자에게 정보를 주기보다 분열을 조장하고, 무분별한 홍보는 지방정부의 행정력과 자원을 고갈시킨다.

      ■ 변화는 가능한가?

      일부 지자체는 폐현수막 재활용을 시도하거나, 홍보물 대신 온라인 플랫폼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공직선거법은 여전히 벽보·현수막 중심의 홍보방식을 ‘필수’로 규정하고 있으며, SNS나 유튜브 등 디지털 매체의 활용에는 과도한 규제가 걸려 있다.

      정작 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탈(脫)현수막 시대에 접어들었다. 핀란드는 우편 홍보물, 미국은 SNS 광고, 일본은 시민모임 중심의 소규모 직접 유세가 중심이다. 유독 한국만이 ‘현수막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 선거는 ‘축제’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소음’일 뿐

      현수막은 말한다. “투표하세요.” 그러나 과연 그것이 시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지만, 그 꽃이 매번 비닐과 종이 더미 속에서 시들고 있다면, 이제는 정치가 먼저 그 방식을 바꿔야 할 때다.

      더 많은 쓰레기가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돕는 선거. 지금 정치가 환경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묻는 것으로부터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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