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 군 병력이 국회 본청을 향해 이동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던 그 순간, 국민의힘 의원 다수는 국회에 없었다. 건너편 당사에서조차 본회의장으로 향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고, 그 10분의 공백은 이후 1년 동안 한국 보수정치의 균열로 되돌아왔다.
12·3 불법 비상계엄 1년. 내란 청산 작업은 더디게 이어지고 있지만, 국민의힘 내부 분열은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조기대선을 거치며 한때 결집했던 힘은 사라지고, 책임 공방과 진영 갈등이 뒤섞인 ‘최대 난맥’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08명 중 18명만 있었다”…남은 건 자책과 의혹
당시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108명 중 고작 18명.
한 초선 의원은 “절반만 표결장에 갔더라면 지금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계엄은 사전 공유된 정황이 거의 없었다.
한 의원은 12월 4일 새벽 “우리 중 누구도 몰랐다. 논의도 없었고 경악스러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시 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표가 유튜브 생방송으로 국민들을 국회 앞으로 결집시키고 소속 국회의원을 국회로 소집하는 방송을 내보내며 군인, 경찰들의 국회 내 진입 시도를 차단하며 표결을 준비한 것과 달리, 당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밤새 동선을 정리하지 못한 채 당사에 모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날 이후 국민의힘은 ‘계엄 동조 세력’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검이 파고든 ‘추경호 책임론’…“표결 시간조차 공유 안 했다”
특검이 확보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진술은 책임 구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핵심은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다.
특검에 따르면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의 본회의 개의 통보, 윤석열 전 대통령 및 대통령실과의 연락, 당헌 57조(원내대표의 정보 제공 의무) 등을 즉시 의원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의 의원은 표결이 이미 시작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는 증언도 확보됐다. 특검은 이를 “표결권 침해”로 판단하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전 원내대표 측은 “통지 의무는 없었고, 의총에서 설명하려 했다”며 반박하고 있지만, 책임론은 이미 당내에서 정치적 파장을 낳고 있다.
‘30% 착시’에 갇힌 전략…결집만 반복한 1년
계엄 실패 직후,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은 장기간 입장을 내지 못했다. 그 사이 중진들이 당의 여론전을 주도하며 “지금 결집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는 기조가 주류 노선이 됐다.
관저 앞 탄핵 반대 집회,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 반대 집회 등 지지층 결집 전략은 단기적으로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다. 한때 당 지지율은 다시 30%대를 회복했고, 조기대선에서 김문수 후보가 41%를 얻으며 “보수의 재결집”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분석은 달랐다. 대다수 여론전문가들은 이를 반(反)이재명 정서의 반사효과로 봤고, 당이 전략적 전환 없이 이를 ‘자체 지지율 회복’으로 착각하면서 위기를 더 키웠다고 지적한다.
탄핵 정국마저 분열…“하야 유도 실패” vs “탄핵 강행이 패착”
계엄 이후 탄핵 국면에서도 국민의힘의 전략은 일관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의 트라우마가 국민의힘에는 크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탄핵 찬성파: “하야 유도에 실패한 뒤라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탄핵했어야 했다.”
▲탄핵 반대파: “탄핵안을 너무 빨리 가결한 게 패착이었다.”
장동혁 대표는 ‘윤 어게인’ 세력과 중도 실용파 사이의 균열을 봉합하겠다며 지도부에 올랐지만, 결국 두 그룹 모두를 완전히 끌어안지 못했다는 평가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정권을 잃었는데도 국민은 아직 우리를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윤석열·김건희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사과인가, 책임 회피인가…혼란만 키운 메시지
장 대표는 11월 말 대구에서 “민주당의 의회 폭거가 계엄을 불렀다”고 주장하면서도 “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고 말했다.
형식상 진전으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사과인지 변명인지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도부 일부는 “무릎 꿇어도 소용없다”며 사과에 반대하고 있어 메시지 혼선은 더 커진 상황이다. 중도층 이탈은 이미 뚜렷하다.
1년이 지났지만…국민의힘은 아직 그날 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2·3 계엄 1년. 국민의힘을 둘러싼 핵심 질문들은 여전히 그날의 자리에서 멈춰 있다.
왜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에 없었나
왜 표결장에는 18명만 들어갔나
왜 지금까지 명확한 책임 정리와 사과가 나오지 않는가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스스로 12·3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보수 재건의 길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정치사의 한 분기점을 만든 그날 밤.
국민의힘은 아직도 그 시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