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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밑동까지 덮었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누가 깔았을까

2026-09-15 12:37 | 입력 : 마포저널

부암동 은행나무 현장에서 발견한 포장 절단 흔적…‘행위소’로 다시 바라본 도시의 바닥
서울환경연합 시민참여 워크숍, 나무를 둘러싼 시설·관리·제도의 관계 추적

부암동 환기미술관 옆 은행나무를 살펴보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의 줄기와 뿌리만이 아니었다. 나무 밑동 주변을 둘러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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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는 나무 주변의 포장면을 기계적으로 잘라낸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건 이후 종로구가 나무 주변의 아스팔트 등을 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환경연합 역시 당시 나무가 제초제 피해를 입은 뒤 뿌리가 숨 쉴 수 있도록 나무 주변 아스팔트를 즉시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9월 12일 서울환경연합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마련한 시민참여 워크숍 ‘관계를 소환하라-도시나무를 둘러싼 행위자들’ 1회차 현장 조사에서 직접 확인한 모습이다.

그런데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줄기에 가까운 부분까지 포장이 밀착돼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부분도 눈에 띈다.

대체 누가, 언제, 왜 이곳까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깔았을까.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가 아스팔트를 조사하게 됐다

이번 워크숍의 주제는 ‘도시나무를 둘러싼 행위자들’이다.

서울환경연합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의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사람뿐 아니라 빛과 물, 토양, 생물, 시설, 소유와 관리 책임, 법과 제도까지 얽힌 관계를 살펴보고자 했다.

2회차에서 참여자들에게는 각각 하나의 ‘행위소’가 배정됐다.
이번에 배정받은 행위소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였다.
처음에는 다소 의외였다. 은행나무를 조사하러 갔는데 나무가 아니라 바닥을 조사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1회차 현장에서 나무를 자세히 살펴본 뒤에는 질문이 달라졌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단순히 나무 주변에 놓인 건축·도로 자재가 아니었다. 은행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간을 실제로 덮고 있는 물질이었다. 지금은 걷혀진 그 틈새로 여러 식물이 자라고 들고양이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행위소가 되었을까

‘행위소’라는 말은 처음 들으면 사람처럼 행동하는 존재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행위소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에서는 인간만이 아니라 사물과 기술, 자연물 등도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바라본다. 핵심은 사물에 사람과 같은 의도나 감정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다른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무엇을 변화시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따라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행위소로 본다고 해서 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의도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바꾸는 것이다.

‘아스팔트가 무엇인가’에서 그치지 않고 ‘아스팔트가 이 공간에서 무엇과 연결돼 있으며 어떤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단순한 바닥재가 아니다. 나무의 뿌리와 토양, 빗물의 흐름, 보행 공간, 도로와 담장, 시설물의 관리까지 연결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다만 이런 관계 역시 추측만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나무의 생육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토양과 배수, 뿌리의 상태 등을 확인해야 한다.

‘누가 깔았는가’에서 ‘누가 관리하는가’로

누가 깔았는지 알게 되면 다음에는 누가 관리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포장에 균열이나 파손이 생기면 누가 보수하는가. 나무 주변의 포장을 제거하거나 다시 설치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해당 공간의 토지 소유자와 도로 관리 주체는 누구인가. 과거 포장 공사의 기록은 남아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도 생긴다.

이 포장은 은행나무와 어떤 관계에 있었던 것일까.

다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포장이 나무의 생육을 방해했다고 말하려면 실제 뿌리의 상태와 토양, 배수, 포장 구조 등을 확인해야 한다. 현재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포장이 나무 밑동 가까이까지 밀착돼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과 이후 일부가 절단·제거된 모습이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확인해야 할 사실을 찾는 일이다.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도 관계는 남아 있다

이 은행나무는 올해 봄 제초제 주입 사건으로 큰 논란이 됐다. 서울환경연합은 주민들이 나무 주변에서 드릴로 뚫은 구멍과 수간주사 캡을 발견했고, CCTV를 통해 누군가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제를 넣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나무의 회복을 위해 나무 주변 아스팔트를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건 이후 나무를 둘러싼 여러 관계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무를 둘러싼 토지와 담장, 미술관, 주민, 행정기관, 환경단체 등이 각각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 남은 것은 나무의 상처만이 아니다.
포장이 잘려나간 자리, 아직 남아 있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담장, 도로, 토지 소유권, 관리 주체가 모두 하나의 관계망을 이룬다.
그래서 행위소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도 조사 대상이 된다.

그것들이 놓인 방식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물리적 조건이 다른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냈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질문으로 남긴다

이번 워크숍에서 중요한 것은 섣불리 결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참여자 가이드 역시 행위소의 감정이나 의도를 추측하지 않고 확인 가능한 관계와 조건을 살펴볼 것, 알 수 없는 것은 모르는 상태로 남겨 이를 조사 질문으로 바꿀 것을 안내하고 있다.

오는 21일 3회차에서는 이렇게 찾아낸 요소들의 관계를 다시 배치하고 ‘지형도’를 그린다.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한 관찰이 도시의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어디까지 드러낼 수 있을지 살펴볼 차례다.

어쩌면 행위소라는 낯선 개념이 던지는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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