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 주차를 할 때 운전자는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본다. 차가 주차선 안에 들어왔는지 확인하면서 뒤쪽 벽이나 기둥에 부딪히지 않을지도 살펴야 한다. 그런데 바닥에 그어진 주차선은 차량이 뒤로 갈수록 운전자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이 작은 불편에 주목한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서울도, 부산도, 대전도 아닌 충남 공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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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공주시 홈페이지 |
공주시는 기존 바닥 주차선의 세로선을 뒤편 벽이나 구조물까지 위로 연장하는 ‘수직주차선’을 도입했다. 공주시는 지난해 말 공영주차장에 시범 설치한 뒤 이용자 만족도 등을 조사했고, 2026년 3월에는 수직주차선의 정의와 설치기준을 「공주시 주차장 조례」에 반영했다. 공주시는 이를 전국 최초 도입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은 변화가 서울로 넘어왔다. 용산구시설관리공단은 6월 문화체육센터와 이태원초등학교 수영장 주차장 전 구역에 수직주차선을 설치했고, 동작구는 8월 공영주차장 4곳에 시범 설치했다.
주차장을 더 만들기보다 ‘주차할 때 무엇이 불편한가’를 봤다
주차 문제를 이야기하면 흔히 주차면 부족을 먼저 생각한다.
주차장이 부족하면 주차장을 새로 짓고, 주차면을 확보하고,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당연히 상당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주시가 바라본 문제는 달랐다.
주차장 자체가 아니라 주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이었다.
공주시는 공영주차장 이용 증가와 함께 차량 접촉사고와 주차구획선 침범 관련 민원이 발생하자 기존 공간을 어떻게 더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살폈다. 그리고 바닥의 선을 벽면까지 연장하는 방법을 실제 현장에 적용했다.
작은 아이디어였지만 공주시는 이를 단순한 도색으로 끝내지 않았다.
수직주차선의 개념을 조례에 담고, 주차정지턱과 후방 시설물 사이의 거리인 ‘주차구획 후방 이격거리’까지 정의했다. 설치 조건과 높이·너비·색상 등의 기준도 마련했다.
공주시가 공개한 조사에서는 시범 설치 주차장 이용객 238명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 주차 안전도 99.6%, 편의성 97.9%가 나왔다. 공주시는 현장 실측과 분석을 통해 설치 기준도 마련했고, 이후 관내 공영주차장 4곳, 약 480면으로 확대했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민원→실험→검증→기준 마련→제도화로 이어진 것이다.
서울 용산에서는 ‘생활밀착형 혁신’으로
서울에서도 같은 방식의 변화가 나타났다.
다만 용산의 사업 주체는 용산구청 자체가 아니라 용산구시설관리공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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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용산구 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 |
공단은 6월 16일 문화체육센터와 이태원초등학교 수영장 주차장 전 구역에 수직주차선 설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공단은 바닥 주차선을 후방 벽면 등 배후 구조물까지 수직으로 연장하면 운전자가 별도의 보조장치 없이 사이드미러를 통해 주차 상태를 확인하기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공단이 내세운 효과도 주민 생활과 직접 연결돼 있다.
주차 사각지대를 줄여 야간 주차사고와 문콕·충돌사고를 예방하고, 초보·고령 운전자의 주차 편의를 높이며, 바른 주차를 유도해 공간 활용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공단은 이를 ‘선제적 적극행정’이자 ‘생활 밀착형 혁신’으로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공주시와 용산의 설치기준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용산구시설관리공단은 공식 자료에서 ‘최소 70cm 이상’ 높이로 연장했다고 밝혔다. 이는 공주시가 앞서 입법예고한 설치기준의 표현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현재 수직주차선이 전국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기술표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같은 아이디어가 각 기관의 현장 판단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고 있는 단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동작구는 다시 ‘실험’으로 들어갔다
동작구는 지난 8월 7일 공영주차장 4곳에 수직주차선을 설치했다.
흑석빗물펌프장·도화·빙수골장미·서광 공영주차장이 대상이다.
동작구는 주차정지턱이 설치된 주차면을 대상으로 수직주차선을 0.7m 이하로 조성하고 기존 주차구획선과 같은 너비와 색상을 적용했다. 후방에 건물 내벽이나 옹벽 등 구조물이 있는 주차장을 우선 선정했다.
그러나 동작구는 아직 효과가 입증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범 운영과 이용자 만족도 조사를 거쳐 효과를 확인하고, 이후 벽면이 인접한 노외 거주자우선주차장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이 점은 중요하다.
공주가 검증하고 제도화하는 단계라면, 용산은 공공시설에 적용한 단계, 동작은 다시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를 검증하는 단계다.
같은 수직주차선이지만 행정의 단계와 방식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왜 공주였을까
여기서 질문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왜 이런 아이디어는 서울보다 공주에서 먼저 나왔을까.
주차 문제는 특정 도시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의 자동차와 주차 문제가 공주보다 단순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자동차가 많고 주차 문제가 복잡한 대도시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먼저 나오는 것이 당연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공주시가 보여준 것은 도시 규모와 행정의 창의성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주차 민원을 받은 공무원이 “주차선이 잘 안 보인다”는 민원을 하나의 민원번호로 처리하고 끝낼 수도 있다.
다시 칠해주면 된다.
그러나 다른 공무원은 질문할 수 있다.
“왜 주차선은 반드시 바닥에만 있어야 하지?”
이 질문에서 정책이 시작된다.
어떤 공무원이 필요한가
지방정부의 행정성과는 흔히 큰 사업으로 평가된다.
수백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 대형 시설 건립, 도로 확충, 도시재생 사업처럼 눈에 잘 보이는 사업이 성과로 인정받기 쉽다.
하지만 주민의 일상에서 행정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때로 훨씬 작다.
주차선이 잘 보이는가.
횡단보도 신호가 충분한가.
공원 벤치가 실제 이용자의 방향을 보고 있는가.
버스정류장에 비가림 시설이 제대로 돼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하나하나 보면 사소하다. 그러나 주민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문제다.
그래서 좋은 공무원은 반드시 큰 사업을 만드는 사람일 필요가 없다.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불편을 발견하는 사람, 반복되는 민원 속에서 공통된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실제 정책으로 시험해보는 사람이 필요하다.
공주시 사례가 보여준 것은 바로 이 과정이다.
민원을 발견하고, 현장에서 실험하고, 주민의 반응을 확인하고, 설치기준을 만들고, 조례까지 바꿨다.
그리고 이제 서울의 용산과 동작에서도 같은 아이디어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시험되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정책은 꼭 서울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우리 행정에서 익숙한 정책의 흐름은 대체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방식이다.
서울에서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다른 지방정부가 벤치마킹한다.
하지만 수직주차선 사례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지방에서 나온 작은 생활행정 아이디어가 서울로 들어왔다.
물론 공주가 용산과 동작의 직접적인 도입 계기가 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세 기관이 서로를 벤치마킹했다는 직접적인 근거도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세 곳에서 같은 문제를 바라보고 같은 방식의 해법을 실제 행정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기술이 아니다.
주차선을 벽까지 올리는 기술은 대단한 첨단기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해볼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주차선 하나가 던지는 질문
공주시가 시작한 수직주차선은 이제 용산과 동작으로 확산하고 있다.
앞으로 이 정책이 실제로 사고를 얼마나 줄이는지, 설치비용 대비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운전자 만족도가 지속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특히 현재 단계에서 ‘문콕 사고가 줄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공주에서도 높은 만족도 조사 결과가 확인된 것이지, 장기간의 사고 통계로 효과가 입증된 것과는 구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작은 주차선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어떤 공무원을 필요로 하는가.
큰 예산을 확보해 큰 사업을 만드는 공무원인가.
아니면 주민이 매일 겪지만 너무 익숙해져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불편을 발견하는 공무원인가.
주차선을 벽까지 올리는 데 거대한 예산은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했던 것은 “왜 이래야 하지?”라는 질문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좋은 행정은 거대한 계획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주민이 매일 지나치는 바닥의 주차선 하나를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