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버즘나무, 일제 잔재?”… 마포구 가로수 교체 논란
    •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가로수, 단순 교체론은 역사 무시
    • 마포구청이 최근 “양버즘나무는 일제강점기의 잔재 수종”이라며 소나무로 교체하는 사업을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주장을 단순하고 편향된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의 가로수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역사적 문화유산으로, 양버즘나무는 일제 시기만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구간은 지난 여름 양버즘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시민들에게 제공하였다.
      지난 여름
      지난 여름 지난 여름 뜨거운 도시는 앙상한 소나무 그늘로 버텼다. 8월 당시 촬영

      서울시립대 도시조경학 연구팀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로수의 기원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고구려 양원왕 2년(546년), 고려 명종 27년(1197년) 기록에 가로수로 추정되는 사례가 등장하며, 조선 세종 23년(1441년)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표목(標木)으로 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단종 1년(1453) 기록에는 소나무, 회화나무, 밤나무, 버드나무, 세조 5년(1459)에는 뽕나무까지 식재되며, 이미 조선 초기에 가로수 제도가 체계적으로 시행되었음을 보여준다.

      18세기 정선의 『압구정』과 『진헌마정색도』에도 줄지어 선 가로수들이 등장한다. 영조·정조 시기에는 왕릉 행차로와 도성 출입로를 따라 소나무·전나무·버드나무를 식재하며, 도로 보호, 표식, 성역화 등 다양한 목적을 지닌 상징적 조경이었다.

      근대적 가로수 개념은 1895년 고종 32년부터 도입된다. 당시 한양의 도로 좌우에는 사시나무 등 속성수가 주요하게 식재되며, 조선 정부가 스스로 선택한 근대 조경의 시작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양버즘나무가 도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에도 서울시는 양버즘나무를 주요 가로수로 유지·확대했다. 1950~60년대 조사에서도 양버즘나무는 대표 가로수로 기록되며, 현재까지 서울 거리를 상징하는 나무 중 하나다.

      즉, 양버즘나무는 단순한 ‘일제 잔재’가 아니라 조선 말~현대까지 이어진 서울 도시 조경의 역사적 연속성 속에 있는 수종이다.
      도시조경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 기록이 있다고 해서, 수종 전체를 ‘잔재’로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의 가로수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시대를 기록한 살아있는 역사다.
      전문가들은 “안전과 생태적 측면은 고려하되, 역사적 가치와 연속성을 훼손하는 단순 교체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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