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가 저지른 마케팅 참사는 우리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를 선포하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던 공안당국의 망언(“책상에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을 연상시키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결합한 사건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것은 절대 우연한 실수일 수 없다”는 격앙된 분석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세 가지 명확한 역사적 상징이 단 하나의 페이지에 조합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업형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형태의 기괴한 조롱이 일각에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 오는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17주기 추도식 당일에 서울 연남동의 한 공연장에서 단독 공연을 강행하겠다는 스무 살 래퍼 ‘리치 이기’(본명 이민서)의 행보다. 그가 내건 공연 입장료는 정확히 ‘52,300원’이다.
5월 23일이라는 날짜, 특정 혐오 커뮤니티의 낙인이 찍힌 활동명, 그리고 서거일을 그대로 숫자로 치환한 입장료 가격까지. 스타벅스의 사태가 기업 내부의 역사적 감수성 마비와 시스템 붕괴가 낳은 참사라면, 이 무명 래퍼의 공연은 역사적 비극과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고의적으로 모욕해 사익을 취하려는 ‘노이즈 마케팅’의 극치다.
두 사건이 가리키는 위험한 신호는 동일하다. 우리 사회의 인류보편적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 어디까지 추락했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에는 최소한 사회적 금기로 여겨졌던 타인의 고통과 국가적 비극이, 이제는 기업의 이윤을 위한 자극적인 상술이나 개인의 ‘힙함’을 가장한 조회수 장사의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특정 마케팅이나 하위문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인류보편적 문제, 즉 인권과 평화, 폭력에 대한 기억을 대하는 사회 일각의 천박한 태도를 이미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끊임없는 훼손과 조롱 논란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전시 여성 인권을 상징하는 소녀상을 향해 가해지는 테러와 정치적 비하 역시 본질은 같다. 역사의 거대한 비극과 인간의 존엄성을 인류보편적 인권의 관점이 아닌, 자극적인 콘텐츠나 정쟁의 도구로 소비하는 무지와 가학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래퍼의 ‘52,300원짜리 조롱’, 그리고 소녀상에 대한 모욕은 참혹한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고 타인의 피눈물에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일부의 도덕적 파산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역사적 기억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탱하는 도덕적 이정표다. 5·18과 박종철 열사,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소녀상이 상징하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망각한 사회는 언제든 타인의 비극을 상품화하거나 비웃는 야만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나 마케팅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문명사회가 공유해야 할 인류보편적 윤리 기준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거룩한 역사적 자산과 인권의 가치는 결코 방종한 상술이나 철없는 조롱의 노리개가 될 수 없다. 이제는 이 잔혹한 무지와 조롱의 비즈니스에 사회적인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