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AI 기본사회’ 구상이 구체적 실행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기본소득·기본사회 등 기존 담론이 정치적 공방 속에서 혼선을 겪어온 것과 달리, AI 기반 도시 전환은 산업계·학계·지방정부가 별다른 이견 없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추진 동력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문진석 의원실과 시티타임스가 공동 개최한 ‘K-AI 시티가 온다’ 정책포럼에서는 정부가 준비 중인 3개 AI 특화 시범도시의 조건과 운영 구조, 데이터 사회로의 전환이 직면한 현실적 과제들이 쌓인 청중 속에서 밀도 있게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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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준 한성대 부동산대학원 원장이 좌장을 맡았고,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와 이세원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이 발제를 했고, 윤종빈 국토교통부 도시경제과장, 전천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국가시범도시팀장, 김준범 네이버 클라우드 상무, 유은길 시티타임스 편집국장이 '한국형 AI 시티 구현 방향 및 국가 시범도시 선정기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
AI 기본사회, 왜 ‘도시’에서 시작하나
정부가 AI 기본사회 구축의 첫 단계를 ‘AI시티’에서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교통·치안·행정·에너지 등 도시 운영 전 영역이 데이터 기반으로 통합되면, AI가 일상 속 공공서비스를 직결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포럼에서 2028~2030년 사이 첫 번째 대국민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종빈 국토부 도시경제과장은 “AI시티는 시설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도시 운영 체계를 새로 설계하는 일”이라며 기존 스마트시티 사업의 한계를 지적했다.
실제 스마트시티는 기술 도입에도 불구하고 시민 체감도가 낮아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비해 AI시티는 도시가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를 조기 진단하고, 정책이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형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이다.
“도시는 완성품이 아니다”…업계가 짚은 현실
포럼 패널들은 공통적으로 “AI시티는 지속 업데이트되는 플랫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네이버클라우드 김준범 상무는 “기술이 바뀌는 속도를 행정 절차가 따라가기 어렵다”며 목표 시스템 방식의 ‘완성형 도시’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국토연구원 이세원 연구위원 역시 “한국은 규제와 행정 속도가 글로벌 표준에 뒤처져 있다”며 현행 정보화 사업 방식으로는 도시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AI 도입이 가져올 지역 격차 문제도 지적했다. 단국대 김현수 교수는 “미국은 민간 중심, 중국은 국가 중심 경쟁이 치열하다”며 “한국은 민관협력 모델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지속 운영이 어렵다”고 경고했다.
AI 기본사회는 ‘데이터 참여 사회’…인센티브가 관건
AI시티 시범도시가 본격 운영되면, 거주민들은 일상 데이터를 훨씬 많이 제공하게 된다.
교통 패턴, 건강·운동 데이터, 생활환경 정보 등이 모두 도시 운영에 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데이터 참여 인센티브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티타임스 유은길 편집국장은 “30대 여성은 안전, 50대 남성은 친환경성, TK 지역은 생활편의성을 우선하는 등 시민 요구가 세부적으로 다르다”며 “데이터 제공이 곧 서비스 개선으로 연결된다는 확실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시범도시 주민에게 별도의 보상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책 구호에서 정책 구조로…이재명 정부의 첫 시험대
이재명 정부는 대선 전부터 ‘기본사회’ ‘기본소득’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왔지만, 선거 과정에서 개념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회적 설득력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AI 기본사회는 정치적 부담이 적고, 국제적 경쟁에서도 뒤처지기 어려운 분야라는 점에서 국정과제 중 가장 현실적 동력을 갖는 영역으로 평가된다.
정책포럼에서도 “AI기본사회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경쟁”이라는 발언이 이어졌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만이 2017년부터 제조업 전반에 AI를 투입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역은 준비돼 있는가…마포·수도권에도 남은 숙제
AI 기본사회가 도시 단위로 실현된다면, 지방정부의 역량 차이는 곧 지역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데이터 인프라, 교통체계, 교육 수준, 산업 기반 등 모든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역시 AI 기반 정책 실험에 나서고 있지만, 시민 데이터 활용과 행정 시스템 전환은 아직 초기 단계다.
시범도시가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이미 격차가 벌어진 지역의 체감도는 더 낮아질 수 있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AI 기본사회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문제, 그리고 지역 간 협력과 조정의 문제라는 점을 포럼은 분명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