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선택이지만, 유기는 죄"라는 단정이 너무 쉽게 던져지는 시대다. 그러나 이 단정 사이에는 ‘도망칠 수 없는 임신’과 ‘도와주는 이는 없었던 출산’이라는 두려움과 고립이 있다. 누군가는 혼자 집에서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몰래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이를 두고 떠난다.
지난해 도입된 위기임신보호출산제는 이런 여성들에게 국가가 처음으로 내민 ‘공적 손길’이었다. 제도가 시행된 지 1년, 총 1,882명의 위기임산부가 상담을 받았고, 그 중 325명이 원가정 양육, 입양, 보호출산 등 스스로의 선택으로 출산 이후 삶을 설계할 수 있었다. 160명이 직접 양육을 택했고, 32명은 입양을, 107명은 보호출산을 결정했다. 특히 19명은 숙려기간 중 마음을 바꿔 아이를 직접 기르기로 했다. 제도가 생명이 선택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선택’의 가능성이다. 위기임산부는 ‘가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고, 상담과 숙려기간을 통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아동은 국가의 보호 아래 태어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출생증서를 통해 출생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제도는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국 16개 지역상담기관과 ‘1308’ 통합 상담번호, KB증권과 스타벅스 같은 기업, 한국여성변호사회 등 전문가 단체까지. 이 연결망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장 고무적인 변화는 수치다. 출생 후 유기된 아동 수가 제도 도입 전인 2023년 88명에서, 2024년 30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는 단순한 감소가 아닌, 사회가 생명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징후다.
그러나 이 제도는 아직 출발선에 있다. 여전히 많은 임산부는 이 제도를 모르고 있고, 가명 진료나 상담조차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 상담기관의 지역 편차, 종사자의 전문성, 사후지원체계도 정교화가 필요하다. 아이의 출생증서를 보관하고 향후 공개할 시스템도 투명하고 안전해야 한다.
출산과 양육은 더 이상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제도는 국가가 아이의 ‘두 번째 부모’가 되겠다고 선언한 첫걸음이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복지국가의 방향이다.
이제는 묻지 말고, 기다려주고, 붙잡아줄 때다. “당신이 낳은 아이, 함께 키우겠습니다.” 이 말이 공허하지 않도록, 제도가 더 단단해져야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소속 기관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