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동수 칼럼]쿠팡의 '하루 쉼표'가 던진 질문… 노동존중, 진짜 시작되려면
    • 대선일이었던 6월 3일, 쿠팡은 처음으로 ‘로켓배송’을 멈췄다. 그간 ‘연중무휴’를 상징처럼 내세웠던 쿠팡이 “택배노동자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다. 이는 배송노동자에게는 단순한 휴무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역사적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날, 노동자들은 두 배 가까운 물량을 떠안았고, 일부 대리점에서는 대놓고 "사실상 출근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표면적 휴무 뒤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노동 압박'은 쿠팡의 변화가 과연 진심인지 묻게 한다.

      노동자의 ‘참정권’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야간 배송기사들은 그날도 새벽까지 일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대낮에 투표장을 찾아야 했다. 주간 물량은 야간으로 떠넘겨졌고, 현장은 예측대로 혼란스러웠다. 이는 “하루 쉰다”는 선언만으로는 실질적 권리 보장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쿠팡은 오랜 기간 노동 관련 사회적 대화에 불참해 왔다. “신생업체”라는 이유를 들며 ‘과로사 방지 대책’에서조차 빠졌다. 그 사이, 쿠팡은 시장 점유율 37.6%로 택배업계 1위가 됐고, 이름뿐이던 신생업체는 이제 업계를 이끄는 ‘거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거인의 어깨 위에는 이제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올라와 있다.

      이번 선거일 휴무는 분명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하루 쉼표만으로는 쿠팡 노동자의 과로, 불안정 고용, 하청 구조, 야간 장시간 노동 같은 구조적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배송 없는 날’이 고작 하루 늘어났다고 해서, 노동존중이 이뤄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쿠팡이 쉬게 해줬는가?”가 아니라, “쿠팡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쉼을 만들 것인가?”로 말이다.

      쿠팡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함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이번 변화가 ‘이미지 세탁용 알리바이’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쿠팡이 진짜 사회적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 ‘산업구조의 재설계’에 나설 것인지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노동자의 권리는 하루 휴무로 측정되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는, 그들이 다음날 무사히 출근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일상에서 시작된다. 쿠팡은 그 출발선에 겨우 발을 디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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